독일의 통일
1871년 독일 제국의 건국을 계기로 여러 군소국들이 같은 정부와 언어를 공유하는 하나의 국가로 형성된 사건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독일의 통일(독일어: Deutsche Einigung, 독일어: [ˈdɔʏtʃə ˈʔaɪnɪɡʊŋ] ( 듣기))은 소독일주의[lower-alpha 3]의 개념에 기반한 독일인들의 연방제를 갖춘 최초의 국민 국가 독일이 건설된 사건을 말한다. 1866년 8월 18일 북독일 연방 조약이 체결되면서 북독일 연방이 성립되었는데, 이 북독일 연방은 사실상 프로이센이 지배하던 군사동맹이었고 이는 북독일 연방 헌법이 채택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북독일 연방은 1871년 1월 18일 대부분의 독일 남부 국가들이 독일 제국의 선포와 함께 제국에 가입하면서 호엔촐레른가의 프로이센 왕국이 주도하는 25개의 구성국들로 이루어진 연방 독일국이 성립되면서 끝났다. 독일의 통일과 관련된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은 1871년 1월 1일의 독일 남부 국가의 가입과 '독일 제국'이라는 국명의 헌법적 채택과 1871년 5월 4일의 독일 제국 영구헌법의 발효가 있으며, 이 사건은 이후 독일 제국 건국의 관례적인 날로 기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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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명 | Deutsche Einig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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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866년 8월 18일 – 1871년 1월 18일 |
위치 | 북독일 연방 |
참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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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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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로 인한 법률적, 행정적,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옛 제국의 독일어권의 사람들은 공통적인 언어적, 문화적, 법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은 왕조 중심적이고 절대주의적인 사회와 정치 조직의 체제에 도전함으로써 독일의 통일을 위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들은 독일의 전통, 교육, 언어적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적으로, 1818년 프로이센 주도로 관세동맹(Zollverein)이 성립된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주도하는 독일 연방의 다른 국가들로의 확대로 국가 간의 경쟁이 감소했다. 새로운 교통 수단은 사업적, 여가 여행을 쉽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중앙 유럽 전역의 독일어권 사람들 사이에 많은 접촉이 생겼고, 종종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1814년-1815년 빈 회의에서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외교적 영향권 체제인 독일 연방은 합스부르크의 지도력을 통해 중앙 유럽에서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확고히 했다. 빈의 외교관들은 프로이센의 힘이 커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고, 프로이센의 영향을 받는 독일 국가들의 또다른 연합을 만드는 것을 거부했으며,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에서의 지도력을 위해 오스트리아에게 도전하여 일어설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이러한 독일 문제의 이원론은 통일 문제에 2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독일을 주장하는 소독일주의(Kleindeutsche Lösung)였고, 두 번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하는 독일어권의 통일 독일, 즉 프라하 평화 협정 이전의 독일을 주장하는 대독일주의(Großdeutsche Lösung)였다.
역사가들은 프로이센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1866년 북독일 연방을 확장하여 나머지 독립 독일 국가들을 단일 국가로 포함시키려는, 즉 독일을 통일하려는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프로이센 왕국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이었는지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비스마르크의 현실정치에 더해 여러 요인들이 19세기 근대 초기 정체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 관계를 재편성하게 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 덴마크와 프랑스의 민족주의에 대한 반응은 독일 통일의 표현을 제공했다. 3번의 지역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군사적 성공은 정치인들이 독일의 통일을 촉진하게 만드는 열정과 자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나폴레옹 전쟁, 특히 1813년과 1814년의 나폴레옹으로부터의 해방 전쟁에서 얻은 성취에 대한 기억의 영향을 받았다. 소독일주의의 통일은 다민족인 오스트리아-헝가리나 독일어권 지역 없이 1871년의 정치적, 행정적 독일의 통일은 이원론의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했다.
독일이 통일되고 몇 년 동안 이름과 국경이 추가로 변경되고 헌법 체계가 개편되었으며, 제한된 주권, 영토와 정부의 통합이 중단되었다. 이후 연방제의 독일이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통일 과정에서 비롯된 정치 경험은 독일연방공화국이라는 현대적인 형태로 오늘날까지도 존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