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제1제국
서기 7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유럽 남동쪽에 존재했던 중세 불가리아-슬라브와 후의 불가리아 국가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불가리아 제1제국(영어: First Bulgarian Empire) 또는 불가리아 제1차르국(불가리아어: Първo българско царство 퍼르보 벌가르스코 차르스트보)은 680년경 불가르인들이 발칸 반도 동북부에 건국한 중세 국가이다. 불가르인들은 비잔티움 제국을 몰아낸 후 남슬라브족 정착민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들의 영향력은 부다페스트와 흑해 사이에서 확산되었으며 드네프르강에서 아드리아해에 이르렀다. 그들의 지위가 발칸반도 내에서 공고화하면서,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는 수세기에 걸쳐 때로는 친밀하게, 때로는 적대적으로 유지되었다. 불가리아는 계속적인 전쟁의 결과로 발칸 반도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가장 주요한 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이슬람 제국의 두번째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를 분쇄하는데 불가리아 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평화와 동맹의 시기를 맞았다. 비잔티움 제국은 불가리아에 문화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마침내 864년 불가리아에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아바르족의 붕괴 이후 불가리아는 그들의 영토를 판노니아 평원(현재의 헝가리)까지 확장하였다. 이후 불가리아인들은 페체네그인과 쿠만족의 성장과 직면하였고, 마자르족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그들을 영구히 판노니아에 정착시켰다.
불가리아 제국 | ||||
---|---|---|---|---|
Първo българско царство | ||||
| ||||
9-10세기 당시 불가리아 제1제국의 구조 | ||||
수도 | 플리스카 (681년 ~ 893년) 프레슬라프 (893년 ~ 972년) 스코페 (972년 ~ 992년) 오흐리드 (992년 ~ 1018년)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카나수비기 681년 ~ 700년 852년 ~ 889년 889년 ~ 919년 | 아스파루흐 보리스 1세 시메온 1세 | |||
차르 919년 ~ 927년 | 시메온 1세 | |||
인문 | ||||
공용어 | 불가르어 중세 그리스어 고대 불가리아어 | |||
민족 | 불가리아인 (불가르인, 남슬라브인) | |||
종교 | ||||
국교 | 불가리아 정교회 (870년 이후) | |||
기타 종교 | 텡그리교 슬라브 이교 | |||
기타 | ||||
현재 국가 | 불가리아 |
9세기와 10세기 초반 동안 차르 시메온 1세는 비잔티움 제국에 계속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불가리아 제국은 절정에 도달하였다. 917년 안키알로 전투에서 비잔티움 군대를 전멸시켰고, 923년과 924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은 회복세를 맞았고 1014년 바실레이오스 2세의 치세에 클레이디온 전투(벨라시차 전투)에서 불가리아군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1] 1018년에 마지막 불가리아 거점이 비잔티움 제국에 항복하였고, 불가리아 제1제국은 멸망하였다.[2] 이는 1185년이 돼서야 불가리아 제2제국으로 계승되었다.
864년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불가리아는 슬라브 유럽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들의 선도적인 문화적 위치는 수도 프레슬라프에서 키릴 문자가 발명되면서 굳혀졌으며, 고대 불가리아어로 쓰여진 문학 작품들이 북방으로 전파되었다. 고대 교회 슬라브어로 알려진 고대 불가리아어는 남유럽의 공용어가 되었다.[3][4] 927년에는 완전히 독립된 불가리아 정교회 총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7세기와 10세기 사이에 불가르족과 다른 부족들은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고 있던 슬라브족[5][6][7] 들에게 점진적으로 흡수되었고, 남슬라브족의 언어를 채택하였다.[8] 10세기 후반까지 '불가리아'라는 이름은 토착 거주민들과 그들의 언어, 문학의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교회 슬라브어의 발전은 남슬라브족의 주변 민족으로의 동화를 막았고, 불가리아의 개별적 정체성의 형성을 촉진하였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