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일본 제국의 군대 (1871-1945)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일본군(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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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 |
日本軍 | |
육군기 | |
해군기 | |
국적 | 일본 제국 |
---|---|
창립일 | 1871년 |
해체일 | 1945년 |
후신 | 자위대 |
편제 | 일본 제국 육군 일본 제국 해군 |
충원방식 | 징병제 |
징집 연령 | 20 ~ (3년제) |
지휘체계 | |
본부 | 일본 육군성: 도쿄도 우시고메구(현 신주쿠구) 일본 해군성: 도쿄도 고지마치구(현 지요다구) |
통수권자 | 메이지 천황 다이쇼 천황 쇼와 천황 |
총참모장 | · |
군사비 | |
방위산업 | |
함께 읽기 |
일본군의 전략과 작전은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의 대외 정책에 기인했다. 1870년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낙후한 지역으로 규정했듯. 일본 제국 정부도 한반도와 중국을 낙후한 지역으로 보고 이들을 "정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3] 1910년대까지 일본 제국은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일본 제국의 대외전략이 1920년대 이후 각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로 선회됨에 따라 일본군도 실력을 양성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1930년대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다시 발흥하면서 만주에 대한 침략과 해외 전쟁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되기 시작했고, 1940년대 초에는 일본 정부의 집단전시체제에 따라 전국민이 일본군과 동일하게 인식되었다. 이 기조는 1945년 일본 정부가 패색이 짙어졌음에도 1억 총옥쇄와 같은 주장을 펼치며 이어졌다.
해외에서 일본군의 위상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높아졌고,[4] 이후 1900년대 의화단 운동과 러일 전쟁을 통해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군대로 인식되었다.[5]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이 연합국의 편에 서서 참전하여 전승국의 이권을 누리게 됨으로서 이는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 해군과 일본 제국 육군은 이후 러시아 내전, 장제스의 북벌 등에 개입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일본군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이후 일본 제국이 국제 연맹을 탈퇴하면서 일본군의 행동도 더욱 대담해졌다. 1937년 중일 전쟁, 1939년 할힌골 전투, 1940년 인도차이나 침공, 뒤이은 1941년 진주만 공격으로 일본 제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어야 했다.
1942년까지 일본군은 동남아시아, 중국 대륙, 만주, 사할린섬 남부, 한반도, 태평양 각지의 섬과 알류샨 열도 등을 정복하면서 세력을 최대로 키웠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역 등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일본군의 세력은 점차 축소했고, 1944년에는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도 미군과 영국군에게 패배하였다. 1945년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그리고 소련-일본 전쟁으로 일본군은 대부분 궤멸되었고, 종전 후 잔류 일본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군은 연합국에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