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윌슨
영국의 정치인 (1916–1995)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리볼의 윌슨 남작, 제임스 해럴드 윌슨(James Harold Wilson, Baron Wilson of Rievaulx, KG, OBE, 1916년 3월 11일 ~ 1995년 5월 24일)은 1964년부터 1970년,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총리를 지낸 영국의 노동당 소속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의 생애 중 1964년과 1966년, 1974년 2월과 10월의 4차례 선거에서 노동당을 이끌어 승리하였으며, 자신의 임기 중간에 다른 총리가 집권한 가장 최근의 총리이기도 하다.
해럴드 윌슨 James Harold Wilson | |
해럴드 윌슨(1962년) | |
영국의 제48대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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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64년 10월 16일~1970년 6월 19일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전임: 앨릭 더글러스흄(제47대) 후임: 에드워드 히스(제4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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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제50대 총리 | |
임기 | 1974년 3월 4일~1976년 4월 5일 |
전임: 에드워드 히스(제49대) 후임: 제임스 캘러헌(제5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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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916년 3월 11일(1916-03-11) |
출생지 |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 허더즈필드 |
사망일 | 1995년 5월 24일(1995-05-24)(79세) |
사망지 | 잉글랜드 런던 |
국적 | 영국 |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 |
정당 | 노동당 |
배우자 | 메리 볼드윈 |
자녀 | 2남 |
종교 | 회중 교회 |
그의 1기는 경제 문제와 북아일랜드 문제와 함께 진행되었다. 윌슨은 1969년에 북아일랜드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여러 노력을 하였으나 큰 결실을 보지 못했다. 1970년 선거에서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에게 패한 윌슨은 1974년까지 야당 대표를 맡아 왔다. 1974년 2월 선거에서 에드워드 히스 내각이 패하면서 노동당은 1당의 위치에 서나 과반수 확보에 실패, 윌슨은 10월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된다. 이 선거에서 승리한 후 그의 2기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존속과 관련해 영국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결정하였다. 서유럽에 차츰 경제 위기가 닥쳐오던 1976년, 그는 갑작스럽게 총리직에서 사퇴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과학혁명시대의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경제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자신이 '온건파'라고 했을 정도로 윌슨은 자신의 내각에 노동당의 여러 인물을 임명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그와 대부분의 각료들의 정치 성향으로 인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1][2]
그가 집권하면서 사회 분야에서 그의 업적이 두드러지게 나왔다. 의회에서 그는 검열, 이혼, 동성애, 이민, 낙태 등 여러 사회 문제와 관련해 진보적인 정책을 취했으며, 부대표였던 로이 젱킨스의 지지로 사형제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그는 정치적 문제를 대처하는데 탁월하다는 평이 나왔으며 특히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에 영국 군대를 파견하라고 압박을 하였을 때도 현명하게 대처해 좋은 평가를 얻었다.[3] 그러나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그의 실패점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윌슨은 자기 고향을 연고로 둔 허더즈필드 타운 FC의 팬이기도 하였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