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캘러헌
영국의 정치가이다.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카디프의 캘러헌 남작, 래너드 제임스 캘러헌 (Leonard James Callaghan, Baron Callaghan of Cardiff, KG, PC, 1912년 3월 27일 ~ 2005년 3월 26일)은 영국의 노동당 정치인으로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노동당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캘러헌은 4개의 영국 주요 장관직을 채운 유일한 인물로 재무 장관 (1964 ~ 1967), 내무 장관 (1967 ~ 1970), 외무 장관 (1974 ~ 1976)과 총리직을 맡았다. 그는 사실 선거를 이기지 않았으며 해럴드 윌슨 총리가 퇴임한 후 총리직에 올랐다. 1979년 캘러헌은 총선에서 보수당의 후보자 마거릿 대처에 의하여 패배하며 총리직을 물려주고 퇴임하였다.
제임스 캘러헌 (1978년) | |
영국의 제51대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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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76년 4월 5일~1979년 5월 4일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전임: 해럴드 윌슨(제50대) 후임: 마거릿 대처(제5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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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912년 3월 27일(1912-03-27) |
출생지 | 영국 햄프셔주 포츠머스 |
사망일 | 2005년 3월 26일(2005-03-26)(92세) |
사망지 | 영국 이스트서식스주 링머 |
국적 | 영국 |
정당 | 노동당 |
배우자 | 오드리 캘러헌 |
종교 | 무신론자 |
캘러헌은 자신이 지불 적자의 균형과 파운드 스털링에 투기적인 공격들을 싸워야 했던 영국 경제에서 소란스러운 시기에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재무 장관이었다. 1967년 11월 정부는 파운드 스털링의 가치를 감하는 데 강요되었다. 캘러헌은 사임하는 데 제안하였으나 로이 젱킨스와 자신의 장관직을 바꾸는 데 설득되어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내무 장관이 되었다. 그 수용력에 캘러헌은 북아일랜드 정부로부터 요청 후, 영국군을 북아일랜드로 배치하는 데 결정을 택하였다.
노동당은 1970년 총선을 패하였으나 캘러헌은 1974년 3월 외무 장관으로서 직위에 돌아와 유럽 경제 공동체의 영국의 회원직에 존속 기관을 재협상하고, 거기에 머무는 데 영국을 위한 1975년 국민 투표에서 찬성 투표를 성원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었다. 윌슨 총리가 1976년 사임할 때 캘러헌은 노동당 의원들에 의하여 새로운 당수로 선출되었다. 책임으로서 그의 하나의 기간은 노동당이 영국 하원에서 다수를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시간이었으며 자유민주당-노동당 협정을 포함한 진행인 자유당과 얼스터 연합당 같은 소수 정당들과 다루는 데 캘러헌을 강요하였다. 1978년 ~ 1979년의 "불만의 겨울"에 산업 분쟁, 큰 파업들과 높은 실업률은 캘러헌의 정부를 인기 없게 만들었고 스코틀랜드를 위한 위원 위임에 국민 투표의 패배는 1979년 3월 28일 불신임 결의의 통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