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프 피우수트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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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폴란드어: Józef Klemens Piłsudski [ˈjuzɛf ˈklɛmɛns pʲiwˈsutskʲi][*], 1867년 12월 5일 ~ 1935년 5월 12일)는 폴란드의 정치가이다.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독재자로서 1918년부터 1922년까지는 국가수령의 지위에 있었고 1920년부터는 폴란드군의 원수를 겸임하였다. 피우수트스키의 정치적 영향력은 제1차 세계대전 중반부터 급상승하였으며, 그 이후 유럽 정치계의 중요 인사가 되었다.[1] 피우수트스키는 123년간 이어져오던 폴란드 분할을 종식시키고 폴란드가 다시 독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2][3][4][5] 그는 리투아니아 출생이었으나 폴란드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모국에 대해서는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다.[6]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 Józef Klemens Piłsudsk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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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가수령 | |
임기 | 1918년 11월 14일 – 1922년 12월 11일 |
전임 | 섭정평의회 (폴란드 섭정왕국) |
후임 | 가브리엘 나루토비치 (대통령 직함) |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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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제2공화국의 총참모장 | |
임기 | 1922년 12월 17일 – 1923년 6월 9일 |
전임 |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
후임 | 스타니스와프 할레르 |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군무장관 | |
임기 | 1926년 5월 16일 – 1935년 5월 12일 |
전임 | 율리우시 타마바말체브스키 |
후임 | 타데우시 카스프르지츠키 |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군부총감 | |
임기 | 1926년 8월 27일 – 1935년 5월 12일 |
전임 | (신설) |
후임 | 에드바르트 리츠시미그위 |
대통령 | 이그나치 모시치츠키 |
폴란드 제2공화국의 총리 | |
임기 | 1926년 10월 2일 – 1928년 6월 27일 (제15대) 1930년 8월 15일 – 1930년 12월 4일 (제20대) |
전임 | 카지미에시 바르텔 (제14대) 발레리 스와베크 (제19대) |
후임 | 카지미에시 바르텔 (제16대) 발레리 스와베크 (제21대) |
대통령 | 이그나치 모시치츠키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67년 12월 5일(1867-12-05) |
출생지 | 러시아 제국 빌나 현 수와프 |
사망일 | 1935년 5월 12일(1935-05-12)(67세) |
사망지 | 폴란드 제2공화국 바르샤바 |
정당 | 폴란드 사회당 → 무소속 |
배우자 | 마리아 피우수드스카 알렉산드라 피우수드스카 |
자녀 | 반다 피우수드스카 야드비가 피우수드스카 |
종교 | 루터교 → 천주교 |
서명 | |
군사 경력 | |
1차대전기의 피우수트스키. | |
복무 | 폴란드 군단 폴란드 육군 |
복무기간 | 1914년–1923년 1926년–1935년 |
최종계급 | 폴란드의 원수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
상훈 |
피우수트스키는 폴란드 사회당의 지도자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한편,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무력을 선택한 피우수트스키는 폴란드 군단을 조직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피우수트스키는 전쟁의 향방에 대해 러시아 제국이 동맹국에 의해 패배하더라도 연합국이 동맹국을 패퇴시킬 것이라 보았다.[7] 전쟁이 시작되자 피우수트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군단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제국의 우군으로서 러시아 제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1917년 러시아 전역의 전황이 불리해지자 피우수트스키는 동맹국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다.
1918년 폴란드는 독립을 되찾아 폴란드 제2공화국이 결성되었고 피우수트스키는 국가수령이 되었다. 이듬해인 1919년 피우수트스키의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선전포고로 폴란드-소비에트 연방 전쟁이 일어났다. 1921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을 통해 폴란드는 폴란드 분할로 인해 러시아에게 할양되었던 우크라이나 서부와 벨라루스를 확보하였다. 1923년 극우적 정치 이념을 내건 야당 국민민주당이 정권을 잡자 피우수트스키의 정치 활동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3년 뒤인 1926년 피우수트스키는 5월 쿠데타를 통해 다시 정권을 잡아 사실상 폴란드의 독재자가 되었다. 피우수트스키는 이후 1935년 사망할 때까지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군사와 외교를 겸임한 수상이라고 여겼다.
정치가로서 피우수트스키의 일관된 정책은 러시아 제국과 그 뒤를 이은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견제 정책인 프로메테우스주의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당시의 영토를 회복하는 몐지모제 연방의 성립이었다. 그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폴란드는 이웃 국가와의 갈등을 겪었으나 폴란드인들은 피우수투스키의 정책을 높게 평가하였다.[8][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