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일요일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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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 사건(Кровавое воскресенье 크로바보예 보스크레세니에)은 1905년 1월 22일[1]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를 말한다. 러시아 제국 당시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자들의 탄원 집회였다. 니콜라이 2세에게 탄원을 하기 위해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인 청원 행진을 하는 것을 정부 당국에서 동원한 근위군이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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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사회체제로 억눌린 러시아 민중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 성화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비폭력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실권자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유혈진압이라는 가혹한 탄압을 가한 사건이다. 죽은 사람만 500∼600명, 부상자 수천 명이나 된 대규모 유혈사태였다. 주동자는 사회개혁론자이자 러시아 정교회 사제인 게오르기 가폰 신부였다.
피의 일요일의 학살은 ‘1905년 혁명’을 활성화시킨 국면의 시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게다가 1905년 혁명의 시작은 라이오닐 코찬과 같은 사학자는 그의 저서 《1890-1918년 러시아 혁명》(Russia in Revolution 1890-1918)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이끈 핵심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