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48년 오스트리아 왕조 전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Österreichischer Erbfolgekrieg,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1740년 ~ 1748년)은 거의 모든 유럽의 강대국이 얽힌 전쟁이다. 이 전쟁은 여자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왕가를 계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각국이 개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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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트누아 전투 (에두아르드 데타일레의 오일 캔버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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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프랑스 왕국[1]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 ||||||
지휘관 | |||||||
프리드리히 2세 |
마리아 테레지아 |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로이센이 벌인 전투에 후세의 군사적 관심과 역사적 의의가 집중되어 있다. 열강이 이 전쟁에 개입하였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전원이 전문적인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이센군의 뛰어난 전투력이었다. 프로이센군은 이전의 전형적인 군대처럼 용병들을 집결시킨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프로이센군의 편제는 당시엔 매우 이례적이었다. 심지어 병과를 조합하는 근대의 전술교리를 창안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조차도 상당한 수의 용병을 운용했는데, 이는 직업적인 상비군을 운용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농민을 징발해서 만든 민병대는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남독일, 네덜란드 및 벨기에 등의 저지대, 그리고 이탈리아는 이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군의 군홧발 아래 짓밟혔다.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굳건한 동맹을 맺었고,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 왕가와 스페인 그리고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이에 맞서 대항축을 이루었다. 유럽 각국은 각자의 이익과 30년 전쟁 혹은 그 이전의 우호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양 세력 중 한쪽에 참여하여 전투를 벌였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적대국이던 대영 제국과 네덜란드 공화국으로부터 거의 대부분의 군수품을 지원받았다. 오스트리아와 동맹관계가 변했던 국가 중에는 사르데냐 왕국과 작센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이 전쟁은 1748년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됨과 함께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