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호
조상 숭배를 위해 군주에게 부여된 사후 칭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묘호(廟號)는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문화권의 왕조국가에서 황제 또는 국왕과 같은 군주에게만 붙인 칭호로 군주가 승하한 뒤 종묘 제도에 따른 태묘(太廟)·종묘(宗廟) 등의 묘에서 군주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었다. 두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앞자는 시호법에 따라 군주의 치세와 업적을 뜻하는 글자인 시자(諡字)이고 뒷자는 ‘조’(祖) 또는 ‘종’(宗)을 붙이는 종호(宗號)이다. 군주와 신하 모두에게 바쳐질 수 있는 시호와는 달리, 묘호는 오로지 종묘에 그 위패가 합사된 군주만이 받을 수 있었던 미칭이다. 본래 묘호는 개국 군주와 같이 공과 업적이 큰 소수의 군주들에게만 허락된 칭호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고대 왕조인 상대에서 한대까지는 묘호를 가진 군주가 많지 않았으나, 점차 모든 군주들의 위패를 태묘에 모시면서 일반화되어 중국 당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군주에게 붙여졌다. 이로 인해 당나라 이후 중국의 군주는 글자 수가 많고 복잡한 시호 대신 묘호로 주로 알려져 있다.[1]
한국의 경우, 삼국 시대 때 묘호에서 본딴 호칭이 일부 사용되었으나 엄연하게는 존호나 시호에 가까웠다. 삼국 중 유일하게 정식 묘호를 사용한 왕은 신라의 태종무열대왕이었다. 그러나 통일신라 시대에 제후국의 종묘 제도인 오묘제(五廟制)가 확립된 이래 고려 시대 때 외왕내제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묘호와 종법 제도가 전래되었다. 이후 원나라의 내정 간섭으로 묘호를 올리지 못하고 이전에 재위한 군주들 역시 모두 낮추어 불렀다가 조선 시대 때부터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후대에 이르러 중국과 한국 모두 묘호의 원래 취지를 상실하고 후대 군주들이 선대 임금에게 높은 묘호를 올려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