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키미
일본 추석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쓰키미(일본어:
음력 8월 보름날 달맞이를 하는 풍속은 당나라 때부터 찾아볼 수 있다. 송대의 『동경몽화록』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거리를 거닐며 밤새 떠드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풍속이 정관 연간(9세기 하반기)에 일본 귀족사회에 전해졌다. 헤이안 시대의 달맞이는 점차 규모가 커져서, 연희 19년(서기 919년) 우다 법황이 일본 독자적인 십삼야 달맞이를 개최했다. 당시 일본의 달맞이는 시가(詩歌)나 관현(管絃)을 즐기며 술을 마시는 고급진 행사로, 서민들과는 인연이 멀었다. 이 시기의 달맞이는 중국이나 일본 모두 종교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고, 달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는 행사였다.
중국은 명나라 때부터 중추절에 월병을 주고받는 습속이 시작되었다고 전여성의 『희조악사』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무로마치 시대에도 달맞이가 계속되었으나, 연회의 본질은 간소해졌고 무로마치 후기에 들어 달을 보고 제물을 올리는 풍습이 생겼다. 『어탕전상일기』에 보면 고요제이 천황이 가지에 뚫은 구멍을 통해 달을 보며 「명월의 축」(名月の祝)을 비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음력 8월 15일경은 달맞이 풍습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원래 토란 수확철이었고, 일본에서도 이 날 토란을 먹는 습속이 있었다. 달맞이가 완전히 세속화된 에도 시대 전기의 기록을 보면 십오야에 이모니(토란찌개)를 먹고 밤새도록 노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달맞이경단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가정에서 제물을 올리는 습속이 시작되는 것은 에도 중기 이후로 보인다. 에도 후기의 세시기인 『수정만고』를 보면 십오야 날 후즈쿠에(책상) 위에 제단을 차리고 제물로 달맞이경단을 올리는데, 에도에서는 동그랗게, 게이한 지역에서는 토란 모양으로 경단을 빚는다고 적혀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