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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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Desert Father)란 3세기 경 주로 이집트의 스케티스 사막에서 생활한 은수자, 금욕주의자, 수사, 수녀(사막 교모)를 가리킨다. 가장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270년 ~ 271년에 그 사막으로 이주하여 사막 수도원주의 교부이자 창시자가 된 대 안토니우스다. 356년에 안토니우스가 죽을 때 쯤 수천 명 수사와 수녀가 "사막이 도시가 되었다"라고 표현한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우스 전기에서 그 본보기를 따라 사막에서 거주하기 위해 이주했다.[1] 사막 교부들은 초기 기독교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은수 수사들의 비공식적인 모임에서 발달한 사막의 수도원 공동체들은 기독교 수도원주의 모범이 되었다. 아토스산 동방 수도원 전통과 서방의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는 모두 그 사막에서 시작한 전통을 강하게 영향받았다. 중세 수도원 부흥은 모두 감화와 안내를 추구하며 사막으로 향했다. 헤시카즘 운동을 포함하는 동방 정교회 영성 대부분은 사막 교부 실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 학자들은 심지어 독일의 복음주의, 펜실베니아 경건주의, 영국에서 감리교 부흥과 같은 같은 종교 부흥 조차도 사막 교부 영향을 받았다고 여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