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아 제국
고대 인도의 통일제국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마우리아 제국은 기원전 320년부터 기원전 185년까지 존속했던 고전기 인도의 제국으로, 인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제국 중 하나이다.
마우리아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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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파탈리푸트라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황제 기원전 322년 ~ 298년 기원전 298년 ~ 273년 기원전 273년 ~ 232년 기원전 232년 ~ 224년 기원전 224년 ~ 215년 기원전 215년 ~ 202년 기원전 202년 ~ 195년 기원전 195년 ~ 187년 기원전 187년 ~ 185년 | 찬드라굽타(초대) 빈두사라 아소카 다샤라타 삼프라티 살리수카 데바바르만 샤타단반 브리하드라타(말대) | |||
왕조 | 마우리아 | |||
입법부 | 만트리파리샤드 | |||
역사 | ||||
역사적 시대 | 고전 시대 | |||
• 건국 | BC 322년 | |||
• 마우리아-셀레우코스 전쟁 | BC 305년 ~ BC 303년 | |||
• 칼링가 전쟁 | BC 268년 ~ BC 265년 | |||
• 최대 영토 확보 | BC 265년 | |||
• 멸망 | BC 185년 | |||
지리 | ||||
위치 | 남아시아 | |||
면적 | 5,000,000 km2 | |||
인문 | ||||
공통어 | 마가다 프라크리트어 | |||
지역어 | 박트리아어 아람어 코이네 그리스어 | |||
공통문자 | 브라흐미 문자 | |||
민족 | 인도아리아인 드라비다인 야바나인 사카인 | |||
인구 | ||||
기원전 261년 어림 | 약 1500만명 ~ 3000만명[10] | |||
경제 | ||||
통화 | 파나 | |||
종교 | ||||
종교 | ||||
기타 | ||||
현재 국가 |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네팔 |
마우리아 제국의 창건자이자 초대 황제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카우틸랴라고도 불리는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자인 차나키야의 도움으로 군대를 키우고,[19] 기원전 322년에 난다 제국을 전복시켰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남긴 그리스계 사트라프들을 정복함으로써 인도 중부와 서부 전역으로 빠르게 힘을 확장하였으며, 기원전 317년 인도 북서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20] 그후 발발한 마우리아-셀레우코스 전쟁에서 셀레우코스 제국의 창시자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를 물리쳤고 평화 회담의 결과로 인더스강 서쪽의 영토를 획득하였다.[21][22]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중부 인도와 남인도 지역을 정벌하며 타밀라캄과 칼링가를 제외한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통일하였다.
이후 마우리아 제국은 히말라야산맥의 자연 경계를 따라 동쪽으로는 벵골, 서쪽으로는 오늘날의 발루치스탄, 파키스탄 및 오늘날의 동부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산맥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23] 2대 황제인 빈두사라 치세에는 남인도 지역으로 확장되었지만,[24][25] 칼링가는 아소카에 의해 정복되기 전까지 독립적인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26]
3대 황제인 아소카 치세에는 칼링가를 정복하며 타밀라캄을 제외한 인도 아대륙 지역 대부분을 통일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전성기 인구가 5천만에서 6천만 사이를 기록할 정도로 당시 고대 국가 중에서는 매우 많은 인구를 자랑했으며,[27][28] 면적 또한 19세기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제국을 제외한 남아시아 역사상의 국가들 중 제일 넓은 면적을 자랑했지만, 아소카 사후 암군들의 통치, 왕위 계승 분쟁, 사타바하나 등 제국 내 영토들의 독립,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같은 외세의 침략 등으로 점차 쇠퇴하다가 기원전 185년에 푸샤미트라 숭가의 쿠데타에 의해 왕조가 전복되면서 마우리아 제국은 멸망하였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 그의 후임자들에 의해 단일하고 효율적인 재무, 행정 및 첩보 체계가 구축되면서 인도의 대내외 무역과 농업 및 경제 활동이 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번성하였다. 마우리아 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무역로 중 하나인 그랜드 트렁크 로드를 건설하여 인도 아대륙 북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연결하였다.[29] 칼링가 전쟁이 끝난 후, 제국은 아소카 지배하에 거의 반세기 동안 중앙집권화된 통치를 경험하였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자이나교 개종은 남아시아 전역의 사회 종교 개혁을 증가시켰고, 아소카의 불교 수용과 불교 선교 후원으로 스리랑카, 북서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이집트 및 헬레니즘 유럽에 불교 신앙이 전파될 수 있었다.[30]
마우리아 제국의 인구는 1,500만에서 3,000만 사이로 추정된다.[10] 차나키야의 《아르타샤스트라》, 아소카의 칙령, 메가스테네스의 《인디카》는 마우리아 시대의 주요 사료 기록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인도 공화국의 상징에는 마우리아 요소가 들어가 있는데, 사르나트에 있는 아소카의 사자상은 오늘날 인도의 국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 인도의 국기 흰색 배경 중앙에는 국가의 진보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아소카가 자주 사용한 24개의 바퀴살을 지닌 법륜 문양인 아소카차크라가 감색으로 칠해진 채 그려져 있다.[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