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자라-프라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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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자라-프라티하라(산스크리트어: गुर्जर-प्रतिहार)는 8세기 중반부터 11세기까지 인도 북부 대부분을 지배했던 고전후 시대 인도 아대륙의 제국이다. 초기에는 우자인을 수도로 삼다가 나중에 카나우지로 천도하였다.[1]
구르자라-프라티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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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자라-프라티하라의 최대강역(800년경 ~ 950년경). | ||||
수도 | 카나우지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마하라자디라자 730년 ~ 760년 836년 ~ 885년 1024년 ~ 1036년 | 나가바타 1세(초대) 미히라 보자 자사팔라(말대) | |||
역사 | ||||
• 건국 | 750년 | |||
• 멸망 | 1174년 | |||
지리 | ||||
위치 | 라자스탄 | |||
인문 | ||||
공용어 |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트어 | |||
민족 | 구르자라인 | |||
종교 | ||||
종교 | 힌두교 | |||
기타 | ||||
현재 국가 | 인도 |
구르자라-프라티하라는 인더스 강 동쪽으로 이동하는 아랍 군대를 저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2] 나가바타 1세는 주나이드와 타민의 아랍 침공군을 격파하였으며, 나가바타 2세의 치하에서 프라티하라는 북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왕조로 거듭났다. 그의 아들인 미히라 보자에게 왕위가 계승되기 전에 라마바드라가 왕위를 잠시 계승하여 통치하였다. 보자와 그의 후계자 마헨드라팔라 1세 치하에서 프라티하라 제국은 번영과 권력의 절정에 이르렀다. 마헨드라팔라 시대에는 서쪽으로 신드 국경에서 동쪽으로 벵골까지, 북쪽으로 히말라야산맥에서 남쪽으로 나르마다강까지 뻗어 있는 이 영토는 굽타 제국과 맞먹는 영토였다.[1][3] 확장은 인도 아대륙의 통제를 위해 라슈트라쿠타 및 팔라 제국과의 삼자 투쟁을 촉발하였다. 이 기간 동안 프라티하라 제국은 아리아바르타의 마하라자디라자(인도의 왕중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구르자라-프라티하라는 조각품, 조각된 패널 및 개방형 파빌리온 양식의 사원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사원 건축 양식의 가장 큰 발전형인 카주라호는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4]
프라티하라의 힘은 왕조의 분쟁으로 약화되었으며, 916년경에 라슈트라쿠타의 통치자 인드라 3세가 이끄는 대규모 습격의 결과로 카나우지를 약탈당한 이후로 프라티하라의 힘은 더욱 줄어들었다. 다소 불분명한 통치자들의 계승 아래, 프라티하라는 이전의 영향력을 결코 회복하지 못했다. 그들의 봉신국들은 점점 더 강력해졌으며, 프라티하라의 마지막 중요한 왕인 라자팔라는 1018년 가즈니의 마흐무드에 의해 카나우지에서 쫓겨났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