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코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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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에르난도 "에르난" 코르테스 데 몬로이 이 피사로 알타미라노 델 오아하카계곡 제1대 후작(스페인어: Don Hernándo "Hernán" Cortés de Monroy y Pizarro Altamirano, I marqués del Valle de Oaxaca [erˈnaŋ korˈtes ðe monˈroj i piˈθaro][*]:1485년-1547년 12월 2일)은 카스티야 출신의 정복자이다. 16세기 초 오늘날의 멕시코 본토 지역의 아스텍 제국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카스티야 국왕의 식민지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코르테스는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식민화의 첫 단계를 끊은 식민지 개척자 첫 세대에 속한다.
에르난도 코르테스 데 몬로이 Don Hernándo Cortés de Monro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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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 |
제1대 오아하카계곡 후작 | |
재위 | 1529년-1547년 |
전임 | (신설) |
후임 | 마르틴 코르테스 수니가 |
군주 | 카스티야 국왕 카를로스 1세 |
제1, 3, 10대 누에바에스파냐 도독 | |
재위 | 1526년 6월 25일-1526년 7월 3일 |
전임 | 알론소 데 에스트라다 & 로드리고 데 알보르노스 |
후임 | 루이스 폰세 데 레온 |
재위 | 1521년 12월 30일-1524년 10월 12일 |
전임 | 크리스토발 데 타피아 |
후임 | 알론소 데 에스트라다 & 로드리고 데 알보르노스 & 알론소 데 수아소 |
재위 | 1521년 8월 13일-1521년 12월 24일 |
전임 | (신설) |
후임 | 크리스토발 데 타피아 |
군주 | 카스티야 국왕 카를로스 1세 |
이름 | |
휘 | 에르난도 코르테스 데 몬로이 이 피사로 알타미라노 (스페인어: Hernándo Cortés de Monroy y Pizarro Altamirano)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85년 |
출생지 | 카스티야 왕국 메데인 |
사망일 | 1547년 12월 2일 (62세) |
사망지 | 카스티야 왕국 카스티예하데라쿠에스타 |
부친 | 마르틴 코르테스 데 몬로이 |
모친 | 카탈리나 피사로 알타미라노 |
배우자 | 카탈리나 수아레스(Catalina Suárez) 도냐 후아나 데 수니가(Juana de Zúñiga) |
자녀 | 돈 마르틴 코르테스 수니가 도냐 마리아 코르테스 도나 카탈리나 코르테스 도냐 후아나 코르테스 레오노르 코르테스 모크테수마 마르틴 코르테스 엘 메스티소 |
친인척 | 프란시스코 피사로(6촌형) |
종교 | 천주교 |
서명 | |
군사 경력 | |
근무 | 쿠바 도독부 |
지휘 | 누에바에스파냐 도독부 |
주요 참전 | 멕시코 정복 과테말라 정복 유카탄 정복 알제리 원정 (1541년) |
메데인 출신으로 하급귀족인 코르테스 데 몬로이가에서 태어났다. 신세계에서 모험과 부를 찾고자 했고, 처음에는 히스파니올라, 그 다음에는 쿠바로 건너가 엔코미엔다가 되었다. 에스파냐인이 세운 쿠바 두 번째 도시 산티아고에서 잠시간 알칼데로 일했다. 1519년, 제3차 본토원정대 대장으로 선출되었고 자신도 이 원정에 사비를 일부 출자했다. 쿠바 도독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케야르는 코르테스와 불화하여 마지막 순간에 원정대를 소환했으나 코르테스는 소환 명령에 불응하고 원정을 강행했다.
미주대륙 본토에 상륙한 코르테스는 일부 원주민과는 동맹하고, 다른 원주민과는 적대하면서 성공적인 전략을 펼쳤다. 쿠바 도독부에서 항명자 코르테스를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코르테스는 싸워 이기고 쿠바군을 흡수, 자신의 군세에 보충시켰다. 코르테스는 쿠바 도독 디에고를 건너뛰고 카스티야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바로 서한을 보내 자신의 항명을 벌하기보다 자신의 성공을 인정해 주십사 청하였다.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킨 뒤 코르테스는 그 상으로 오아하카계곡 후작의 작위와 누에바에스파냐 도독의 직위를 받았다. 하지만 더욱 영예로운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의 자리는 상급귀족 안토니오 데 멘도사에게 돌아갔다. 1541년 코르테스는 에스파냐 본국으로 소환되었고 더 이상 실권을 누리지 못하자 6년 뒤 홧병으로 죽었다.
코르테스는 그 행적 자체가 논쟁적인 인물일 뿐 아니라, 그에 관한 정보의 출처가 될 1차문헌들이 희박하여 개인적 인격이나 동기,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정복자를 떠받들던 시기에도 코르테스 개인에 관한 심도있는 탐구는 진행되지 않았고, 이후 탈식민주의 맥락에서 미주 정복사를 재독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 코르테스에 대한 묘사는 악당으로서 죄악시하거나 또는 모험가로서 이상화하는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