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
프랑스의 제3대 대통령 (1808–1893)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1](Patrice de Mac Mahon, 1808년 6월 13일~1893년 10월 17일)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또한 마크 마옹은 귀족으로, 초대 마장타 공작 및 마크 마옹 백작 작위를 가졌다.
간략 정보 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Patrice Maurice de Mac Mahon, 프랑스의 제3대 대통령 ...
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 Patrice Maurice de Mac Mah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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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마옹 대통령 공식 사진. 피에르 프티가 촬영함. | |
프랑스의 제3대 대통령 | |
임기 | 1873년 5월 24일~1879년 1월 30일 |
총리 | 쥘 뒤포르 쥘 시몽 알베르 드 브로이 가에탕 드 로슈부에 쥘 뒤포르 |
전임: 아돌프 티에르(2대) 후임: 쥘 그레비(제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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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808년 6월 13일(1808-06-13) |
출생지 | 프랑스 손에루아르 쉴리 |
출생명 | Marie Edmé Patrice Maurice de Mac Mahon |
사망일 | 1893년 10월 17일(1893-10-17)(85세) |
사망지 | 프랑스 루아레 몽크레송 샤토 드 라 포레 |
정당 | 왕당파 |
배우자 | 엘리자베트 드 라 크루아 드 카스트리 |
군사 경력 | |
복무 | 프랑스 왕국 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 제2제국 |
복무기간 | 1827-1873 |
소속 | 프랑스 육군 |
최종계급 | 총사령관 |
지휘 | 프랑스 외인부대 |
참전 | 알제리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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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마옹은 프랑스로 망명한 아일랜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세부터 37세까지 알제리에서 군무에 종사하였다. 그는 1853년 크림 전쟁에 출정하고 원수로 승진하였다. 1870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제l군 사령관이 되었으나, 작전에서 실패하였으며, 9월에 세당 근처에서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1871년 3월 파리 코뮌에 대항하여 베르사유 정부군의 총사령관으로 복귀하였으며, 코뮌을 괴멸시켰다.
1873년 5월 왕당파의 추대로 티에르에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행정면에 수완이 없어 그가 기대하던 왕정복고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1875년의 헌법제정을 거쳐 7년제의 대통령 임기를 실현시킨 후에도 여전히 왕당파의 입장을 추진했으나, 공화파에 밀려 1879년 정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