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
4-6세기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일대에서 거주했던 투르크 민족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훈족(-族, Huns)은 4-6세기 중앙 아시아와 코카서스에 존재하던 민족으로, 튀르크 계열로 추정되는 유목민족이다.[1][2]유럽의 전승에 따르면, 훈족들은 당시에 스키티아라고 알려진 지역의 일부였던 볼가강 동쪽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훈족의 정착은 인도이란인 계열 민족인 알라니족들의 서쪽으로 이주에도 관련이 있다.[3] 370년에, 훈족들은 볼가강에 이르렀고, 로마 제국의 국경 밖에 살고 있던 고트족과 다른 게르만족들을 정복하고, 많은 게르만족들을 로마 영토로 도망치게 한, 이들은 430년에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유럽에 거대한 영토를 세웠다. 특히나 아틸라 왕의 지도하에서, 훈족들은 동로마 제국에 잦고 파괴적인 약탈을 벌였다. 451년에는 서로마 제국의 갈리아 속주를 침입하여,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로마와 서고트 연합군과 교전했으며, 452년에는 이탈리아를 침입했다. 453년에 아틸라가 죽은 후로, 훈족들은 로마를 향한 위협을 멈추었고 네다오 전투 패배 후로 영토의 상당량을 상실했다. 훈족의 후예들이나 유사한 명칭을 가진 후계자들은 대략 4-6세기에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남쪽과 동쪽, 서쪽의 이웃한 민족들에게 기록되었다. 훈족의 변형적 명칭들은 코카서스에서는 8세기 초까지 기록되었다.
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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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경 훈족의 영토 | ||||
정치 | ||||
정치체제 | 부족 연합 | |||
왕 또는 족장 370년대? 395년경-? 400년경-409년 412년경-? 420년대쯤-430년 430년-435년 435년–445년 445년–453년 453년-469년 469년-? | 발람베르? Kursich와 Basich 울딘 Charaton 옥타르와 루가 루가 아틸라와 블레다 아틸라 뎅기지크와 에르나크 에르나크 | |||
역사 | ||||
• 카스피해 북서쪽에 훈족이 출현 | 370년대 이전 | |||
• 알라니족과 고트족을 정복 | 370년대 | |||
• 아틸라와 블레다가 부족 연합의 공동 지배자가 됨 | 437년 | |||
• 블레다 사후, 아틸라가 단독 지배자가 됨 | 445년 | |||
• 카탈라우눔 전투 | 451년 | |||
• 이탈리아 침공 | 452년 | |||
• 네다오 전투 | 454년 | |||
• 아틸라의 아들, 뎅기지크 사망 | 469년 | |||
인문 | ||||
공용어 | 훈어 고트어 다양한 부족어 |
18세기에 프랑스 학자 조제프 드 기네는 훈족 그리고 기원전 3세기 북아시아에 존재했던 흉노족과의 연관성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4] 기네 이후로 훈족은 이란계 유목민족들의 영향을 받은 이란계 훈족 또는 투르크 민족으로 알려져있다. 이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흉노는 몽골에서 기원했을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및 게르만족과 혼혈된 것으로 밝혀졌다.[5] 이란의 훈족과 남아시아의 후나족과 같은 다른 단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훈족의 문화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최종적으로 훈족과 관련되었다는 유적지들은 극히 미미하다. 훈족들은 청동으로 된 가마솥을 사용했고 인위적인 두개골 변형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틸라 시대의 훈족의 신앙이나 종교에 대한 비문은 남아있는 것이 없고, 점복이나 샤먼의 존재 같은 풍습들은 존재한다. 훈족들이 튀르크어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직 세 단어이자 인명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인명은 대부분이 튀르크적이지만 동게르만식에 영향을 받았다. 경제적으로 이들은 유목 목축의 형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와의 접촉이 늘어남에 따라, 훈족의 경제는 조공, 약탈, 교역을 통하여 로마와 점차 엮이게 되었다. 훈족들은 유럽으로 진입할 때는 통일된 정치 체제를 가지지 않고, 로마인들과의 전쟁에서 통일된 부족 지도 체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훈족들은 다양한 언어를 가진 여러 민족들을 지배했으며, 피지배 민족들 일부는 자기들만의 지도자를 유지했다. 훈족의 핵심 군사 기술은 궁기병이었다.
훈족들은 서로마 제국의 붕괴에 기여를 한 요소인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자극했을 것이다.[6][7] 훈족에 대한 기억은 여러 기독교 성인들의 삶에도 살아있는데, 거기서 훈족들은 게르만 신화의 인물들에 대한 적이나 동맹 역할로 나오는 게르만족 영웅 전설에서뿐만 아니라 기독교 성인들에게서는 적대 인물 역할을 한다. 헝가리에서는 헝가리인, 특히나 세케이인계가 훈족들의 후손이라는 중세 연대기를 바탕으로 한 전설이 발전했다. 하지만 주요 학계는 헝가리인과 훈족들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부인한다.[8][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