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연구회
일본 자유민주당의 파벌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헤이세이 연구회(平成研究会)는 일본 자유민주당의 파벌 중 하나다. 옛 명칭은 경세회(経世会)이며 파벌 회장인 모테기 도시미쓰의 이름을 따서 모테기파(茂木派)라고도 한다.
원어 명칭 | 平成研究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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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모테기파 |
전신 | 목요 클럽 |
결성 | 1987년 7월 4일(36년 전)(1987-07-04) |
설립자 | 다케시타 노보루 |
유형 | 자유민주당의 파벌 |
본부 | 전국정촌회관서관 |
위치 | |
회원 | 자유민주당 회원 |
공식 언어 | 일본어 |
회장 | 모테기 도시미쓰 |
예산 | 242,021,860엔[1] |
과거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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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의 요시다 시게루 파벌을 기원으로 하며 사토 에이사쿠의 주산회와 다나카 가쿠에이의 목요 클럽의 계보를 잇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시다 파벌을 기원으로 하는 굉지회 계열 파벌들과 함께 보수본류에 속한다.
요시다의 파벌을 계승한 이케다 하야토와 사토가 각각 파벌을 만들었는데 이 중 사토의 파벌을 다나카가 물려받았고 그것을 다시 다케시타 노보루가 물려받아서 1987년에 만든 것이 경세회다. 1994년 헤이세이 정치연구회로 개칭했다가 다시 헤이세이 연구회로 개칭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자유민주당의 주류파로 군림했으며 자민당을 넘어 일본의 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나카는 최대 파벌의 실질적인 영수로서 어둠의 장군이라 불리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후에는 다케시타가 그 영향력을 물려받았다. 오자와 이치로와 하타 쓰토무가 개혁포럼21을 창립해 새 파벌을 만들면서 당내 제4파벌로 전락한 뒤에도 하시모토 류타로와 오부치 게이조를 내각총리대신으로 만드는 등 여전히 주류파로 군림했다.
하지만 오부치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총리를 배출하지 못했으며 2003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를 제외하곤 독자적인 총재 후보조차 옹립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에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선임된 사람도 노나카 히로무와 모테기 도시미쓰뿐이었다. 현재에 이르러선 파벌로서의 결속력이 상당히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