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5세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이다.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필리프 5세(프랑스어: Philippe V le Long, 1292년 ~ 1322년 1월 3일)는 장신왕(프랑스어:le Long)으로도 알려진 1316년부터 1322년까지의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펠리페 2세)이다.
필리프 5세 Philippe V le L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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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와 프랑스의 왕 | |
재위 | 1316년 11월 20일 ~ 1322년 1월 3일 |
대관식 | 1317년 1월 9일 |
전임 | 장 1세 |
후임 | 샤를 4세 |
이름 | |
별호 | 장신왕, 키다리왕 |
신상정보 | |
출생일 | 1293년 경 |
출생지 | 프랑스 리용 |
사망일 | 1322년 1월 3일 (29세)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블루아 드 불로뉴 롱샹 수도원 |
가문 | 카페 왕가 |
부친 | 필리프 4세 |
모친 | 호아나 1세 |
배우자 | 잔 2세 (부르고뉴)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묘소 | 생드니 대성당 |
필리프는 프랑스의 군주 필리프 4세와 나바라의 여왕 호아나 1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푸아티에 백국을 아파나주로 받았고, 한편 그의 형인 루이 10세는 프랑스와 나바라 왕위를 상속하였다. 루이가 1316년에 사망할 때, 그는 딸 하나와 임신한 아내 헝가리의 클레멩스를 두고 떠났다. 장신왕 필리프는 섭정 자리를 성공적으로 차지해냈었다. 클레멩스 왕비는 장 1세라고 선포된 아들을 낳았으나, 어린 왕은 겨우 5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조카가 사망하자, 필리프는 곧바로 렝스에서 즉위식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정통성은 루이 10세의 딸 잔의 도전을 받았다. 필리프 5세는 그녀가 어리다는 것,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의심들 (그녀의 어머니가 네슬 탑 사건에 연루), 여성은 프랑스 왕위 계승 순서에 배제되어한다는 삼부회의 결정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근거로 그녀의 왕위 주장에 대한 다툼에서 승리를 거뒀다. 잔을 대신한 필리프의 왕위 계승은 살리카법으로 알려질 프랑스 왕위 계승의 선례를 세웠다.
필리프는 그의 아버지 때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던 플랑드르 백국과 어느 정도 우호 관계를 회복시켰으나, 동시에 처남인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와 관계는 악화되었는데, 동시에 기옌 공작이기도 한 에드워드가 초기에 그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는 걸 거부했었다. 1320년 노르망디에서 무어인들한테 이베리아반도를 해방시키는 걸 목표로 한 즉흥적인 민중 십자군이 시작됐다. 대신에 분노한 민중들은 성, 왕실 관료, 성직자, 나병 환자, 유대인들을 공격하러 남쪽으로 진격하였다. 필리프는 왕국의 관리를 개선시키걸 목표로 한 여러 개혁에 착수하였다. 이 개혁들은 독립적인 재정 부서 설립, 단위 표준화, 단일 화폐 설립 등을 포함하였다.
1307년에 필리프는 부르고뉴 백작 잔 2세와 혼인하였고, 이들 사이에서 딸 넷이 태어났다. 부부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이에 따라 1322년 필리프가 이질로 죽자, 그의 뒤를 동생인 샤를 4세가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