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룬궁
중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종교 운동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파룬궁(중국어 간체자: 法轮功, 정체자: 法輪功, 병음: Fǎlún Gōng, 직역: 법륜공, 영어: Falun Gong) 또는 파룬따파(중국어 간체자: 法轮大法, 정체자: 法輪大法, 병음: Fǎlún Dàfǎ)는 진선인(眞·善·忍, 진실·선량·인내,또는 쩐싼런)을 핵심 사상으로 삼는 중국의 심신수련법이다. 사단법인 한국 파룬따파불학회의 공식 표기법으로는 '파룬따파'이며 영어 표기는 'FaLun DaFa'이다. 파룬궁은 불가와 도가를 포괄하는 성명쌍수공법(性命雙修功法)으로서 심성(心性)을 제고하고 5장공법으로 구성된 연공동작을 통하여 본체(本體)를 개변하는 것인바, 지금의 불교·도교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우주의 연화원리(演化原理)에 따라 수련하며, 우주의 최고특성--眞(쩐)·善(싼)·忍(런) 표준에 따라 수련을 지도한다. 석가모니·노자가 말한 이치는 우리 은하계 범위 내의 이치였지만 파룬따파가 연마(煉)하는 것은 아주 커서 우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다. 지금 사회에서 유전하는 기공(氣功)이 모두 단도(丹道)로 가고 연단(煉丹)하는 것에 속하지만 파룬따파는 단도로 가지 않고 아랫 배 부위에 파룬(法輪)을 수련한다. 파룬은 우주의 축소판으로서 자동적으로 운행(運轉)·회전(旋轉)하여 사람을 연화하므로, 이를 '공이 사람을 연마함(功煉人)' 또 '법이 사람을 연마함(法煉人)'이라고도 한다.
파룬궁은 1992년 5월 13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서 리훙쯔(李洪志) 대사가 처음 전파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중기인 1970년 경부터 ‘기공 열풍’이 불었고, 그때 등장한 기공공파는 2400개 이상이나 되었다. 파룬궁은 공식적으로 회비나 등록비가 없고, 종교처럼 예배를 지내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아무런 형식이 없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의 수련법으로 우주의 근본특성인 진(眞) 선(善) 인(忍)에 동화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서양 학계에선 중국의 전통적 또는 종교적 ‘기공(Qigong, 氣功) 수련법’, ‘영적 운동’, ‘자기계발 수련법’으로 파룬궁을 정의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초기 시절에 파룬궁은 중국 정부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고, 중국 정부 산하 기공과학연구회의 초청으로 직속공파가 되었다. 1992년과 1993년 베이징에서 열린 동방건강박람회에 참가하여 2년 연속하여 최우수공파로 선정되었고 파룬궁 창시인 리홍쯔대사는 만장일치로 '최고의 환영받는 기공사'로 선정되었다. 파룬궁은 수련이고 병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박람회에서는 특별히 병치료를 해 주었는데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기적같이 치료되는 것을 보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련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공산당은 탄압의 구실을 찾고자 1994년 말부터 비밀리에 특무들을 수련계에 파견하여 암행감찰을 계속하였다. 그 주동자는 당시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었다.
1999년에 중국 정부가 추산한 파룬궁 수련 인구는 약 7천만 명에 이르렀다.[1]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탄압의 구실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중공정법위 서기 뤄간(羅幹)의 처남 허쭤슈(何祚庥)는 중국 과학원의 어용 과학자로서 1999년 4월 11일, '청소년과기박람(青少年科技博覽)’’(톈진 교육대학에서 발행한 잡지)'에 '나는 청소년들이 기공수련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파룬궁 비방기사를 기고했다. 톈진 수련자들은 그들이 파룬궁 수련으로 많은 이로움을 얻었기에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다. 그들은 4월 18일과 24일 사이에 톈진 사범대학에 가서 잡지 편집자들과 대화를 통해 기사의 부정적인 영향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잡지사에서 정정보도를 약속할 즈음인 4월 23~24일 갑자기 몰려 온 톈진 공안국의 경찰들은 수련자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45명을 체포 구금하였다. 다른 수련자들이 톈진 수련생들의 석방을 위해 톈진시 정부에 갔을 때 “이 건은 공안부와 관련이 있으며 베이징의 승인 없이 석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톈진 경찰은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베이징으로 가십시오. 베이징에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99.4. 25. 1만여 명의 수련생들은 중앙에 청원하기 위하여 베이징 중난하이 부근의 국무원 상방소(청원국)에 찾아가 청원하였다. 주룽지 총리의 주선으로 수련생 대표들은 체포한 4.25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할 것과 파룬궁의 서적의 합법적인 출판을 허용할 것 및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이것이 바로 "4.25평화대청원"이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을 위주로 한 공산당 지도부는 파룬궁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목표로 전국적 탄압을 실시하고 다각도 언론 캠페인을 펼쳤다. 중국 정부는 파룬궁을 언급한 웹사이트들을 차단하면서 1999년에 파룬궁을 사회 안전을 해치는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은 광범위한 인권 유린을 겪었다.[2] 수십만 명이상이 불법 투옥된 것으로 추산되며, 중국 당국은 사상 개조라는 미명 아래 구금한 파룬궁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노동력 착취, 정신 약물 투여, 고문 및 기타 강제 수단을 취했다.[3] 2009년에 한 인권 단체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소 2천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구금 중 학대로 사망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사상자 수는 더 많을 것이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중국 정부의 장기이식 산업의 희생양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5] 중국 정부의 이러한 박해에도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국 내에서 인권 운동을 더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는 1996년 이후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파룬궁은 전 세계적인 연락망을 갖추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도, 공산당 정부의 박해를 견뎌가며 수 천만 명의 수련자들이 파룬궁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다.[6] 현재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