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르 (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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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조지아어: თამარი, 번역: T'amar or Thamar 또는 타마라)(1160년 ~ 1213년 1월 18일)는 조지아의 바그라티오니 왕조 사람으로 1184년부터 1213년까지 조지아의 여왕을 지냈다. 타마르는 중세 조지아 군주국의 황금시대를 주재했다.[1] 그녀 자신의 권리에 의해 통치한 첫 번째 여왕으로서의 타마르의 지위는 중세 조지아의 문헌들에서 (여왕임에도) 왕이라는 뜻의 메페(mep'e)라는 칭호로 강조된다.[2]
타마르 თამარ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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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방의 왕중의 왕, 타마르...". 바르지아에 있는 성모영면 교회의 벽화. 1184~1186년경. | |
조지아 여왕 | |
재위 | (섭정. 1178년~) 1184년 3월 27일 ~ 1213년 1월 18일 |
전임 | 게오르게 3세 |
후임 | 게오르게 4세 |
신상정보 | |
출생일 | 1160년 |
사망일 | 1213년 1월 18일 (52~53세) |
사망지 | 아가라니 궁전 |
왕조 | 바그라티오니 |
부친 | 조지아의 게오르게 3세 |
모친 | 알라니아의 부르두칸 |
배우자 | 유리 보골류프스키 다비트 소슬란 |
자녀 | 게오르게 4세 루수단 |
종교 | 조지아 정교회 |
묘소 | 므츠헤타, 스베티츠코벨리 대성당 |
타마르는 1178년에 황태녀로 책봉 되었고 그녀의 부친 게오르게 3세와 섭정 통치를 했다. 그러나 게오르게가 죽은 후에 그녀가 통치권을 계승하고 즉위 하는데 있어서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마르는 그러한 반대파 귀족들을 중립화 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셀주크와 비잔티움 제국의 경쟁 세력들의 몰락이 오히려 도움이 되어 활발한 외교 정책도 펼치게 되었다. 타마르는 강력한 군사 지도층에 의존하여, 그녀의 전임자들의 성공을 기반으로, 캅카스를 지배하는 제국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제국권은 타마르가 죽은 후 20년도 채 안되어 몽골의 침입으로 붕괴했다.[3]
타마르는 두 번 결혼했다. 1185년부터 1187년까지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러스의 왕자 유리였는데, 그녀는 그와 이혼했으며 차후에 그의 쿠테타 시도를 진압하고 국가에서 추방했다. 1191년, 타마르가 선택한 그녀의 두 번째 부군은 알라니아의 왕자 다비트 소슬란으로,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게오르게와 루수단 이 두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은 조지아의 왕위를 연속으로 계승한 군주들이다.[4][5]
여성 통치자로서의 타마르의 역할이 결합된 정치적 군사적 성공들과 문화적인 업적들의 기간과의 타마르의 유대는 조지아의 예술과 역사적 기억에서 그녀의 이상화와 로마화로 이어져 왔다. 그녀는 조지아의 대중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으며 조지아 정교회에 의해 거룩하고 옳은 여왕 타마르로 시성되었다. 그녀의 축일은 5월 14일(구 5월 1일)이다.[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