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 안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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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 안노나이(Cura Annonae)는 로마의 여신 안노나를 기리며, 도시 로마의 거주민들에 대한 곡물 수입과 분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던 고대 로마의 용어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306–337년)의 비잔티움 개축 이후, 제국의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자기만의 쿠라 안노나이가 있었다. 로마는 서기 2세기에 백만 명으로 그 수가 추정되는, 인구가 소비하는 곡물의 대부분을 수입했다. 이 활동의 중요한 점은 무료로 혹은 보조금이 지급된 곡물과 나중엔 빵을 로마시의 빈민들에게 나눠주던 정부 프로그램인 구제 곡물이었다. 이 곡물은 거의 20만 명에게 분배되었으며, 인류 초창기의 장기 지속적인 사회안전망의 예시이다.
구제 곡물의 규칙적이고 예상 가능한 공급은 로마의 지도부가 시인 유베날리스가 풍자적으로 칭한 '빵과 서커스'를 공급함으로써 다루기 힘든 로마 도심 인구들의 평온을 유지하려는 계획의 일부였다. 서기 22년에, 티베리우스 황제는 만일 쿠라 안노나이가 소홀히 된다면 '국가의 완전한 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라 말한바 있다.[1]
주로 듀럼 밀인 곡물의 가장 핵심적인 근원지는 이집트, 북아프리카 (오늘날의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시칠리아였다. 이들 지역에서 로마로 바다를 통해 곡물을 수송하는 계획은 일부 매우 거대한, 수백 척의 수많은 배들과, 이 곡물들을 수취하여 로마로 분배해내는 방대한 체계가 필요했다. 곡물 교역에 관한 고고학적 흔적들은 곡물의 부패성 때문에 산발적인데, 이런 점은 고고학자들이 곡물 교역을 추적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2]
로마시의 인구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세기인 5세기, 그리고 6세기 동안에 급격히 감소하였다. 언제 쿠라 안노나이가 끝나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6세기까지는 지속되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