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루스 3세 심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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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3세(Charles III) 또는 단순왕 샤를 (Charles the Simple, 프랑스어: Charles III le Simple, 독일어: Karl der Einfältige, 879년 9월 17일 – 929년 10월 7일)은 카롤링거 왕조의 일원으로 프랑스 왕(서프랑크 왕국)이었다. 샤를 3세는 재위기간 중 로트링겐을 되찾고 노르망디에 노르만족을 정착시켰다. 당대에 그는 카롤루스 심플렉스(Carolus Simplex)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그대로 그의 별칭이 되었다. 그의 축출을 기점으로 카롤링거 왕조는 로렌의 영지를 상실했다.
단순왕 샤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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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랑크 왕국의 왕 로타링기아의 왕 | |
신상정보 | |
출생일 | 879년 9월 17일(0879-09-17) |
사망일 | 929년 10월 7일(929-10-07)(50세) |
사망지 | 페론 |
가문 | 카롤루스 왕조 |
부친 | 루도비쿠스 2세 발부스 |
모친 | 파리의 아델라이데 |
배우자 | 프레데루나 (907년-917년) 웨섹스의 에드지푸 (919년-) |
자녀 | 루이 4세 |
종교 | 로마 가톨릭 |
말더듬이 루이 2세의 유복자였으며 884년 의붓형 카를로망이 죽었을 때나 887년 11월 삼촌인 동프랑크의 뚱보 카를 3세가 물러났을 때, 나이가 너무 어려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났다가 893년 1월 28일 랭스 대주교 풀크 등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일부 귀족들에 의해 추대된 외드와 5년간 대립하였다. 동프랑크의 아르눌프는 샤를과 외드를 모두 보름스로 소환했지만 그는 아르눌프의 지시를 거절했고, 화가 난 아르눌프는 샤를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내란이 계속되자 897년 왕위를 포기했다가 898년 1월 아들이 없던 외드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음으로써 내전이 종식되었다.
집권 초 바이킹과 사라센의 양쪽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재위기간 중 바이킹 족의 침투를 격퇴하였으나 내분을 수습하지 못했고, 로트링겐을 차지하기도 했다. 920년에는 독일을 침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922년 네우스트리아 귀족들의 반란으로 축출되었고, 923년 투옥되었다가 솜주의 감옥에서 사망했다. 카롤링거 왕조의 군주들 중 경건왕 루트비히, 카를 3세 비만왕 다음으로 세 번째로 쿠데타로 축출당한 지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