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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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루스벨트 재키 로빈슨(영어: Jack Roosevelt "Jackie" Robinson, 1919년 1월 31일 ~ 1972년 10월 24일)은 20세기 현대 이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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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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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 |||
생년월일 | 1919년 1월 31일(1919-01-31) | |||
출신지 | 미국 조지아주 카이로 | |||
사망일 | 1972년 10월 24일(1972-10-24)(53세) | |||
사망지 | 미국 코네티컷주 스탬퍼드 | |||
신장 | 180.3cm | |||
체중 | 92.5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2루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45년 | |||
첫 출장 | 1947년 4월 15일 | |||
마지막 경기 | 1956년 9월 30일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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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야구 전당 | ||||
전당 헌액자 | ||||
선출년 | 1962년 | |||
득표율 | 77.5% | |||
선출방법 | BBWAA 선출 | |||
1947년부터 1956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의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1962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또한 그는 미국 내의 인종차별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들로는 유일하게 전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선수이다.[2][3]
재키 로빈슨이 처음 경기에 뛰었을 때, 상대편은 물론 관중들과 일부 같은 팀 선수들조차 그와 뛰기를 거부했는데, 이유로는 그당시 팽배했던 인종차별주의의 영향으로, 당시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사람으로조차 취급당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나, 구단주와 감독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생각으로 이 결정을 내렸다.[4]
그가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는데, 당시 야구가 미국인들의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였음을 감안한다면,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 리그 데뷔는 미국내에서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1947년 신인상, 1949년에는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으며, 6번의 올스타 게임 출전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명예의 전당에 입성 가능한 첫 해에(1962년에 헌액. 1957년 1월, 은퇴선언 ~ 은퇴 후 5년) 77.5%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되었다.
그는 1947년 4월 15일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데뷔했으며, 데뷔시즌에는 처음에는 주로 1루수로 활약했으나 이듬해 1948년시즌부터 본업인 2루수로 자리잡아 매년 2루수로 활약했으며, 1947년부터 1956년까지 다저스에서만 뛰다가 마지막 시즌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트레이드 거부를 선언하고 은퇴 선언했다.
1972년에 향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균타율은 0.311, 총 안타수는 1518개였으며 137개의 홈런을 쳐냈다. 우투우타였으며 훌륭한 주루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5]
1997년 4월 15일, 입단 5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등번호 42번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포함한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