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매킨리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1843–1901)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윌리엄 매킨리 주니어(영어: William McKinley, Jr., 1843년 1월 29일 ~ 1901년 9월 14일)는 미국의 제25대 대통령이다. 최후의 남북 전쟁 종군 경험자 대통령이었고, 19세기 마지막 대통령, 그리고 20세기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윌리엄 매킨리 William McKinle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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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매킨리 (1900년) | |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 |
임기 | 1897년 3월 4일~1901년 9월 14일 |
부통령 | 개럿 A. 호바트 시어도어 루스벨트 |
전임: 그로버 클리블랜드(제24대) 후임: 시어도어 루스벨트(제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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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843년 1월 29일(1843-01-29) |
출생지 | 미국 오하이오주 나일스 |
사망일 | 1901년 9월 14일(1901-09-14)(58세) |
사망지 | 미국 뉴욕주 버펄로 |
학력 | 얼러게니 대학교 마운트 유니언 대학교 올버니 법학대학원 |
정당 | 공화당 |
배우자 | 아이다 색스턴 매킨리 |
종교 | 감리교 |
서명 |
1880년대까지 매킨리는 공화당의 전국적인 지도자였다. 그의 선거전 테마는 1890년의 매킨리 관세로 대표되며, 번영을 위한 공식으로 고율의 수입관세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그는 대항마 민주당 후보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에 금본위제를 내세워 인종 간 다원론을 촉진시켰다. 그의 선거전은 마크 한나에 의해 지휘된 새로운 선거 광고 스타일을 도입하였고, 선거 전략은 최대의 라이벌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물리쳤다. 1896년 대선은 ‘진보의 시대’를 시작하는 재편의 선거로 종종 간주된다.
매킨리는 대불황 (1873년 ~ 96년), 특히 1893년 공황을 겪은 후 회복을 위해 나라를 이끌고, 금본위제를 도입하였다. 그는 스페인에 대해 쿠바에 만행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여론은 스페인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군은 스페인 함대를 괴멸시키고 90일만에 쿠바와 필리핀을 점령했다. 1898년 파리 협정의 결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은 미국에 병합되었으며, 쿠바는 미국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다. 필리핀-미국 전쟁 자체에 대한 지지는 광범위했지만, 민주당과 미국 반제국주의 연맹은 공화제의 가치가 손실될 것을 두려워 하여 필리핀 합병에 격렬한 반대를 했다.
매킨리는 또한 1898년 하와이 공화국을 병합하였고, 나라의 모든 거주자가 미국 국민이 되었다. 매킨리는 19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맞붙었다. 브라이언은 외교 정책과 번영의 복귀에 초점을 맞춘 치열한 선거전을 전개했지만, 맥킨리는 재선을 이뤘다. 매킨리는 1901년, 무정부주의자 리언 촐고츠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의 후임은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승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