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티움 해전
로마 공화국 최후의 전쟁의 결정적 대결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악티움 해전은 안토니우스의 내전 기간에 일어난 해전으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연합 함대와 옥타비아누스의 함대가 교전했다. 기원전 31년 9월 2일 그리스의 악티움 곶 인근 이오니아해에서 전투가 발발했다.
간략 정보 악티움 해전, 날짜 ...
악티움 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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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의 내전의 일부 | |||||||
바로크 시대 아나크로니즘 화가인 로우리 아 카스트로가 그린 악티움 해전 (16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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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옥타비아누스 지지 로마 세력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지지 로마 세력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 ||||||
지휘관 | |||||||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마르쿠스 루리우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콜라 클레오파트라 | ||||||
병력 | |||||||
갤리선 400척[1][2][3][4][5][6][7][8][9] 궁병 3,000명 배에 탑승한 보병 16,000명 |
대형 갤리선 350척[10][11][12][13][14][15][16][17][18] 수송선 30–50척 배에 탑승한 보병 20,000명 궁병 2,000명 | ||||||
피해 규모 | |||||||
약 2,500명 전사 |
5,000명 넘게 전사 250척 침몰 혹은 나포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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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의 승리는 로마와 로마의 영토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세력을 확고히 하게 했다. 그는 프린켑스 ("제1 시민")라는 칭호를 택했고 기원전 27년에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 칭호는 후세에 그의 이름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로서, 그는 복원한 공화정의 지도자의 과시적 요소들을 자제했으나, 역사가들은 그의 권력 강화와 앞서 언급한 존칭들의 채택을 보통 로마 공화정 시대의 종말이자 로마 제정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