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사제로 아리우스주의의 주창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아리우스(라틴어: Arius, 그리스어: Άρειος; 250년/256년 ~ 336년)는 키레나이카 출신의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관구에서 활동했던 초기 기독교의 기독교 성직자였다. 아리우스주의를 주장하여 아리우스파를 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2] 그는 ‘성자’ 예수는 성부에게 종속된 유사한 본질(유사본질)을 가진 성부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3] 당시 그의 주장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폭넓게 받아들여졌지만 결국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직접 주재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결정되었다.
로마 제국에서 리키니우스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한 후, 콘스탄티누스는 교회 안의 신학적 분열을 제거하여 이들을 통합하고자 했다.[4] 당시 교회는 삼위일체론을 두고 분열된 상황이었는데, 이들 중 가장 우세한 측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를 필두로 한 동일본질론자들이었다. 이들의 대척점에는 아리우스를 필두로 한 유사본질론자인 아리우스파가 있었다. 동일본질론자들은 유사본질을 주장하는 이들을 두고 '아리우스파'라 불렀다. 동일본질론자들은 아리우스파의 주장이 맞다면 성자는 없고 성부만 존재하던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들의 주장을 비난했다.
몇 차례의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회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파는 게르만족 왕국들을 비롯한 유럽 전역,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수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후 5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군사 정벌과 왕실의 자발적 개종을 통해 아리우스파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아리우스 이전에도 성자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아리우스가 평신도들을 끌어드리며 논쟁을 격화시켰으므로 아리우스주의는 대체로 아리우스의 것으로 여겨진다. 후기 아리우스파의 일부는 아리우스의 가르침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 역시 모두 아리우스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