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보른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1882–1970)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막스 보른 왕립학회 회원, 에딘버러 왕립학회 회원 (독일어: Max Born, [ˈmaks ˈbɔʁn]; 영어 발음: /bɔ́ːrn/; 1882년 12월 11일 - 1970년 1월 5일)은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로서 양자 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고체 물리학 및 광학 분야에 기여했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많은 저명한 물리학자들의 연구를 지도했다. 보른은 "양자역학, 특히 파동 함수의 통계적 해석에 대한 기초 연구"로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1]
막스 보른 왕립학회 회원, 에딘버러 왕립학회 회원 | |
보른 (1930년대) | |
출생 | 1882년 12월 11일(1882-12-11) 독일 제국 브로츠와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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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0년 1월 5일(1970-01-05)(87세) 서독 괴팅겐 |
안식처 | 괴팅겐 슈타트프리드호프 |
주요 업적 | 보른 근사 보른 좌표계 |
배우자 | 헤드비그 에렌베르크 (결혼 1913) |
자녀 | 3, 구스타프 빅토르 루돌프 보른 포함 |
친척 | 올리비아 뉴턴존 (손녀) 조지 보른 (손자) |
수상 | 노벨 물리학상 (1954) 휴즈 메달 (1950) 막스 플랑크 메달 (1948) 왕립학회 펠로우 (1939) |
과학적 경력 | |
분야 | 이론물리학 |
소속 |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에든버러 대학교 괴팅겐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
학위 논문 | 서로 다른 경계조건에서 평면과 공간에서의 탄성선의 안정성에 대한 고찰(Untersuchungen über die Stabilität der elastischen Linie in Ebene und Raum unter verschiedenen Grenzbedingungen) (1906) |
박사 교수 | 카를 룽게 |
기타 교수 | 볼데마르 포크트 카를 슈바르츠실트 조지프 라모어 조지프 존 톰슨 |
박사 학생 | 메리 브래드번 카이자쳉 |
유명한 학생 | 엔리코 페르미 황 쿤 에밀 울프 |
서 명 | |
보른은 1904년 괴팅겐 대학교에 입학하여 세 명의 저명한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 다비드 힐베르트, 헤르만 민코프스키를 만났다. 그는 "평면과 공간에서 탄성(Elastica)의 안정성"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대학의 철학 교수상(University's Philosophy Faculty Prize)를 수상했다. 1905년에 그는 민코프스키와 함께 특수 상대성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후에 원자의 톰슨 모형에 대한 그의 하빌리타치온 논문을 썼다. 1918년 베를린에서 프리츠 하버와의 우연한 만남은 금속이 할로겐과 반응할 때 이온 화합물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는 오늘날 보른–하버 주기(Born–Haber cycle)로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무선 교환원으로 배치된 후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음향 사정(sound ranging)에 관한 연구 임무를 맡게 되었다. 1921년, 보른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제임스 프랑크를 위해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하고 괴팅겐으로 돌아왔다. 보른 아래 괴팅겐은 세계 최고의 물리학 센터 중 하나가 되었다. 1925년에 보른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행렬 역학 표현을 공식화했다. 이듬해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ψ*ψ 에 대한 확률 밀도 함수의 현재 표준 해석을 공식화하여 1954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의 영향력은 자신의 연구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막스 델브뤼크Max Delbrück, 지그프리드 플뤼게Siegfried Flügge, 프리드리히 훈트, 파스쿠알 요르단,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로타르 볼프강 노르트하임Lothar Wolfgang Nordheim, 로버트 오펜하이머 및 빅토어 바이스코프는 모두 괴팅겐에서 보른 아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또한 그의 조수에는 엔리코 페르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게르하르트 헤르츠베르그Gerhard Herzberg, 프리드리히 훈트, 파스쿠알 요르단, 볼프강 파울리, 레온 로젠펠트Léon Rosenfeld, 에드워드 텔러 및 유진 위그너가 포함되었다.
1933년 1월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하자 유대인인 보른은 괴팅겐 대학교 교수직에서 정직되었다. 그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일했고 대중 과학 책인 《쉬임없는 우주(Restless Universe)》와 곧 표준 교과서가 된 《원자 물리학(Atomic Physics)》을 저술했다. 1936년 10월, 그는 에든버러 대학교의 자연 철학 교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독일 태생의 조수인 E. 발터 켈러만Walter Kellermann 및 클라우스 푸흐스Klaus Fuchs와 함께 물리학 연구를 계속했다. 보른은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하루 전인 1939년 8월 31일에 귀화한 영국인(British subject)이 되었다.이다. 그는 1952년까지 에든버러에 머물렀다. 그는 서독의 바드 피르몬트(Bad Pyrmont)로 은퇴하였고, 또한 1970년 1월 5일 괴팅겐의 병원에서 사망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