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마리아 테레지아[1](독일어: Maria Theresia 마리아 테레지아[*], 체코어: Marie Teresie 마리에 테레시에[*], 헝가리어: Mária Terézia 마리어 테레지어[*], 슬로바키아어: Mária Terézia 마리아 테레지아, 크로아티아어: Marija Terezija 마리야 테레지야, 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크 군주국[2]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3] 그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보헤미아, 만토바, 밀라노,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파르마 등의 통치자였다. 결혼을 하면서 로렌 공작 부인이 되었으며, 후에 토스카나 대공비, 신성로마황후의 지위를 얻었다.[4]
마리아 테레지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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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황후 이탈리아의 왕비 독일 왕비 | |
재위 | 1745년 9월 13일~1765년 8월 18일 |
대관식 | 1743년 5월 12일 |
전임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 |
후임 | 마리아 요제파 폰 바이에른 공녀 |
헝가리 여왕 크로아티아 여왕 오스트리아 여대공 | |
재위 | 1740년 10월 20일~1780년 11월 29일 |
대관식 | 1741년 6월 25일 |
전임 | 카를 6세 |
후임 | 요제프 2세 |
보헤미아 여왕 | |
재위 | 1740년 10월 20일~1741년 1743년~1780년 11월 29일 |
전임 | 카를 6세 카를 7세 |
후임 | 카를 7세 요제프 2세 |
파르마 여공작 | |
재위 | 1740년 10월 20일~1748년 10월 18일 |
전임 | 카를로 2세 |
후임 | 필리포 1세 |
이름 | |
휘 | 마리아 테레지아 발부르가 아말리아 크리스티나 Maria Theresia Walburga Amalia Christina |
별호 | K.K (Königin. Kaiserin)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17년 5월 13일(1717-05-13) |
출생지 |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 호프부르크 왕궁 |
사망일 | 1780년 11월 29일(1780-11-29)(63세) |
사망지 |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 호프부르크 왕궁 |
가문 | 합스부르크 왕가 |
부친 |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 |
모친 |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
배우자 |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1세 |
자녀 | 요제프 2세, 레오폴트 2세 포함 16명 아래 참조 |
종교 | 로마 가톨릭 |
묘소 | 황가납골당 |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1713년 국사조칙에 의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 공표되었으며, 카를 6세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으며, 영토들을 물려받았다.[5] 하지만, 카를 6세 사후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프랑스, 작센에서는 그녀의 계승의 반발하였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되지만,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내주는 대신 각 국으로부터 그녀의 승인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후에 슐레지엔을 찾으려고, 7년 전쟁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과 혼인하였는데, 16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녀의 자녀들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그녀가 생전에 사용했던 칭호는 Königin(여왕)과 Kaiserin(황후)의 머릿글자를 딴 ‘K.K’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