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1세 (포르투갈)
1495년부터 1521년까지 포르투갈의 왕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마누엘 1세 드 포르투갈(포르투갈어: Manuel I de Portugal, 1469년 5월 31일 ~ 1521년 12월 13일)은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의 제5대 국왕이다. 행운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성장기 때부터 즉위할 때까지 그리고 재위 중에도 일생토록 많은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선왕 주앙 2세의 해양 개척 사업을 계승하여 인도 신항로 개척(1498)과 브라질 발견(1500)에 이어 유럽-인도를 잇는 해상무역에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였다.
간략 정보 재위, 대관식 ...
마누엘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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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국왕 | |
재위 | 1495년 10월 25일 ~ 1521년 12월 13일 |
대관식 | 1495년 10월 27일 |
전임 | 주앙 2세 |
후임 | 주앙 3세 |
이름 | |
별호 | 행운왕(O Venturoso)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69년 5월 31일(1469-05-31) |
출생지 | 포르투갈 왕국 알코셰트 |
사망일 | 1521년 12월 13일(1521-12-13)(52세) |
사망지 | 포르투갈 왕국 리스본 |
국적 | 포르투갈 왕국 |
왕조 | 아비스 왕조 |
부친 | 포르투갈의 인판테 페르난두 |
모친 | 베아트리스 |
배우자 | 아라곤의 이사벨 아라곤의 마리아 레오노르 데 아우스트리아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묘소 | 제로니무스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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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 엔히크 왕자(1394~1460) 시절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아프리카 서안, 대서양 탐사가 드디어 결실을 맺어 치세 중 포르투갈에 경제적인 풍요를 듬뿍 안겨다 주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꿈꾸며 친(親)에스파냐 정책의 일환으로 정략결혼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선대왕들의 정책과 반대로 종교순혈주의에 입각하여 유대인과 무슬림의 강제개종과 추방을 추진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506년에 리스본에서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여 치세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약 7,000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재위 기간 중에 건축되며 꽃피운 르네상스 건축장식은 ‘마누엘 양식’이라 불린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