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언 기시
미국의 배우 (1893–1993)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릴리언 다이애나 기시(영어: Lillian Diana Gish, 1893년 10월 14일 ~ 1993년 2월 27일[1])는 1912년부터 1987년에 이르는 75년 동안 활동을 한, 미국의 배우였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유명 영화 스타였다.
릴리언 기시 Lillian Gi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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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릴리언 다이애나 기시 Lillian Diana Gish |
출생 | 1893년 10월 14일(1893-10-14) 미국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
사망 | 1993년 2월 27일(1993-02-27)(99세) 미국 뉴욕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02년 ~ 1993년 |
부모 | 메리 기시 (어머니) |
형제자매 | 도로시 기시 (여동생) |
웹사이트 | (영어) 공식 웹사이트 |
1912년부터 1920년대까지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한 영화 배우였으며, 특히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감독의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수익을 올린 <국가의 탄생>(1915년)에서의 주연을 비롯하여 <인톨러런스>(1916년), <꺾어진 꽃>(1919년), <동부 저 멀리>(1920년), <풍운의 고아>(1921년), <라 보엠>(1926년), <바람>(1928년) 등에 출연했다.
음성영화의 시대의 여명에 그녀는 연극 무대로 돌아와 활동하며 간간히 영화에도 출연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서부 영화 <백주의 결투>(1946년)와 스릴러 <사냥꾼의 밤>(1955년)을 비롯하여 <제니의 초상>(1948년), <결혼식>(1978년), <달콤한 자유>(1986년) 등에서 조연으로 연기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텔레비전 연속극에 출연하기도 하였고 1987년 영화 <8월의 고래>에서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한 것을 끝으로 배우 경력을 접었다.
이후 노년에는 무성영화의 가치와 보존에 있어 헌신적인 옹호자로 활동했다. 영화 배우로 유명했지만 연극에서도 큰 활약을 했고 1972년 미국 연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71년에는 아카데미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으며 1982년 공연예술을 통해 미국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케네디 센터 명예상을 수상했다.
미국 영화의 영부인이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미국 영화 연구소(AFI)는 릴리언 기시를 현시대의 가장 위대한 여성 스타 가운데 17위로 선정하였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