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게릭
미국의 야구선수 (1903–1941)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헨리 루이스 "루" 게릭(영어: Henry Louis "Lou" Gehrig, 출생명은 하인리히 루트비히 게리히(독일어: Heinrich Ludwig Gehrig), 1903년 6월 19일 ~ 1941년 6월 2일)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뉴욕 양키스의 내야수로 활약한 미국의 야구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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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시절의 루 게릭.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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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 |||
생년월일 | 1903년 6월 19일(1903-06-19) | |||
출신지 | 뉴욕주 요크빌 | |||
사망일 | 1941년 6월 2일(1941-06-02)(37세) | |||
사망지 | 뉴욕주 리버데일 | |||
신장 | 183cm | |||
체중 | 91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수비 위치 | 1루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23년 | |||
첫 출장 | MLB / 1923년 6월 15일 | |||
마지막 경기 | MLB / 1939년 4월 30일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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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야구 전당 | ||||
전당 헌액자 | ||||
선출년 | 1939년 | |||
득표율 | 특별투표(결과 불명) | |||
선출방법 | BBWAA 선출 | |||
미국 뉴욕주 뉴욕 출신으로 컬럼비아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3년, 당시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였던 폴 크리챌의 눈에 들어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게 된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이적해 온 베이브 루스와 함께 팀의 중심 타선을 이루었는데, 훗날 이 타선의 이름은 살인 타선(Murderers' Row)으로 불리게 되었다.[1]
1925년 당시 팀 내 주전 1루수이던 윌리 핍을 대신 해 경기에 출장한 이후 14년 동안 2,130 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워 ‘철마’(The Iron Horse)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2] 이 기록은 1995년 9월 6일,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가 경신할 때까지 56년 동안 이어졌다. 12년 연속(1926년 - 1937년) 3할 대 타율과 5번의 40홈런 이상 시즌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하고 힘있는 타격을 보여준 강타자이다.
선수 시절 후반기인 1939년에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되어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3]으로 은퇴하였고, 2년 뒤인 1941년에 서른 일곱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훗날 이 병은 그의 이름을 따서 ‘루 게릭 병’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게 되었다.[4]
1939년 시즌 중 은퇴를 선언하고 그 해 7월 4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제목의 유명한 은퇴 연설을 남겼다. 이 날 양키스 구단은 게릭의 등번호 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였는데 이것은 메이저 리그 야구 최초의 영구 결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