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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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역사는 기원전 1100년경 중동과 아프리카 전역에서 무역을 했던 정착민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많은 고대 아프리카 날 나이지리아로 알려진 이 지역에 정착했다. 예를 들면 느리 왕국[1], 베닌 제국[2], 오요 제국 등이 있다.[3] 이슬람교는 11세기 보르누 제국과 1385년 하우사 왕국을 통해 나이지리아에 도달했고[4][5][6][7], 기독교는 15세기에 포르투갈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카푸친 수사들을 통해 나이지리아에 도달했다.[8] 송가이 제국도 이 지역의 일부를 점령했다.[9] 15세기부터 유럽 노예 무역업자들이 아프리카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 이 지역에 도착했고, 오늘날의 나이지리아 지역에서 시작된 대서양 노예 무역의 일부로서, 유럽 노예 무역업자들이 사용한 최초의 나이지리아 항구는 해안 항구인 바다그리였다.[10][11] 지역 상인들은 그들에게 노예를 제공했고, 그 지역의 민족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사하라 종단 무역을 통해 오래된 무역 패턴을 파괴했다.[12]
라고스는 1851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1865년 영국에 공식적으로 합병되었다.[13] 나이지리아는 1901년에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영국의 통치 기간은 1960년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때 독립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 나라가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14] 나이지리아는 1963년 처음 공화국이 되었으나 3년 후 유혈 쿠데타 이후 군사 통치에 굴복했다. 1967년 비아프라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3년간의 나이지리아 내전이 발발했다.[15] 나이지리아는 1979년에 새로운 헌법이 제정된 후 다시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1983년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잡고 10년 동안 통치하면서 공화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3년에 새로운 공화국이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사니 아바차 장군에 의해 무산되었다. 아바차는 1998년에 사망했고, 그 다음 해에 4번째 공화국이 세워졌고, 이로 인해 30년간의 간헐적인 군사 통치가 끝났다.[16][17]